[이 아침에] 태양을 품은 뱀을 펼쳐보며
올해는 을사년 뱀의 해이다. ‘을(乙)’은 푸른색을 상징하므로 푸른 뱀의 해라고 한다. 뱀은 12간지 동물 중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은 아니다. 오히려 무섭거나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다. 실제로 우리집엔 안창홍 화백의 ‘태양을 품은 뱀’ 이라는 제목의 1989년도 판화가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친정집에 있던 그림을 동생들과 나눌 때 내 몫의 그림 속에 끼어 왔다. 미국에 가져와서는 으스스해서 걸어놓지 않았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권과 문학 속에서 뱀이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동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먼저 뱀은 겨울잠을 자고 봄에 더 건강한 모습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하여 ‘죽지 않고 다시 태어나는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또한 위키백과에 따르면 뱀은 집안의 곳간과 재산을 지키는 가신이나 업신으로 불리며 살림을 늘게 해주고 집을 지켜준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뱀은 ‘지혜’와 ‘치유’를 상징한다. 죽은 사람도 살려냈다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항상 들고 다닌 뱀이 똬리를 튼 지팡이에서 기원한다. 신화에 따르면 아스클레피오스가 환자를 치료하던 중 갑자기 뱀이 방안으로 들어오자 깜짝 놀라서 지팡이를 휘둘러 뱀을 죽였다고 한다. 그런데 잠시 후 다른 뱀이 약초를 물고 와 죽은 뱀을 살리는 것을 보고 그도 그 약초로 환자를 살릴 수 있었다. 그후 그는 뱀의 치료적 영험을 상징하는 뱀 지팡이를 들고 다녔다고 한다. 뱀은 고대부터 치유의 약초를 찾아내는 현명함과 재생의 힘을 가진 상서로운 존재였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의 로고에도 이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뱀의 해’ 라기에 서재 책장 서랍에 둔 그 뱀 그림이 생각났다. 당시에 전도 유망한 젊은 화가의 그림이라고 아버지의 설명을 들었던 터였다. 구글링해보니 36년 세월 사이 꾸준히 활동하셔서 독창적 장르를 개척하신 우뚝 서신 분이 되셨다. 노력한 시간이 준 선물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365개의 새 날을 하늘의 선물로 받았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들이다. 365개의 날 중엔 슬픔과 좌절의 날도 기쁨과 희망의 날도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성경에는 365번의 ‘염려하지 말라’가 써 있다니 인생살이는 매일 근심을 안고 사는 일이 아닐까 싶다. 고금을 막론하여 남들도 그러하다는 말인 듯싶어 크게 위로가 된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며 늘 자신에 차 있던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에서 패한 후 아프리카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폐되어 그곳에서 최후를 맞을 때 그는 참담해하며 “어느 날 마주칠 불행은 언젠가 우리가 소홀히 보낸 시간에 대한 보복이다”라고 탄식했다. 나폴레옹조차도 피해가지 못한 시간의 보복. 뭔가를 해야할 때를 놓치는 것은 시간의 보복을 잉태하는 일이 될 것이다. 작년과 같은 해가 뜨고 새로울 게 없는 일상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어제를 이기는 오늘을 만들어가야겠다. 재산과 곳간을 지켜준다는 뱀 그림을 벽에 걸어야하나 말아야하나. 세상적 욕심 앞에선 뱀의 흉물스러움도 다 용서가 될 듯한 아이러니라니.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태양 곳간과 재산 아프리카 세인트헬레나 치료적 영험